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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의 기도와 하나님의 영광[출 33장]
 
[내용개요]
 시내 산에서의 율법 수여를 통해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에 언약은 체결되었다. 이제부터 이스라엘은 언약의 공동체로 새 출발을 하게 된 것이다. 본장에서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새롭게 출발하는 이스라엘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하여 아브라함에게 언약하신 가나안 땅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시면서도 그들의 죄에 대한 응보로 함께 가시지 않겠다고 하셨다(1-11절). 이에 모세는 하나님께 함께 가시기를 간구하였고 그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은 이스라엘과 동행하실 것을 약속하셨다(12-23절).

 
[강  해]
 우리는 날마다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며 살아갑니다. 어떤 때는 그 은혜가 너무나도 벅찬 것임을 고백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때로는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하기도 합니다. 하나님쎄서 은혜를 거두신다면 과연 어떤 상황이 될 것인가 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 일입니다. 본장에서는 우리가 누리는 은혜가 말할 수 없이 풍성한 것임을 느끼게 해줍니다.

1. 하나님의 동행 거부

1) 약속의 땅을 향한 행진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약속의 땅을 향하여 행진할 것을 명하셨습니다. 그 땅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기로 약속하신 땅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 앞에 그의 사자를 보내시며 그 땅의 족속들을 쫓아내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신실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 줍니다.
a. 약속의 땅(창12:7)
b. 인도자 되신 하나님(시77:20)

2) 백성과 함께 하시기를 거부하심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렇게도 들어가기 원했던 가나안 땅을 다시금 하나님의 약속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감격스럽고 무척 기쁜 일이었음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과 함께 올라가지 않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목이 곧은 백성이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순식간에 진멸하실까 염려하셨던 것입니다. 모세의 기도에서 볼 수 있듯이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진멸한다는 사실은 원수들에게 분명 조롱 거리가 될 것이 자명합니다. 하나님은 그 사실을 기억하셨고 이스라엘 백성의 신실치 못함에 대한 배려를 베푸신 것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동행 거부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크나큰 심판이 아닐 수 없습니다. 백성들은 이 황송한 말씀을 듣고 매우 슬퍼했습니다.
a. 죄의 결과(수7:12)
b. 목이 곧은 백성(대하30:8)

3) 단장품을 제한 백성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목이 곧은 백성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목이 곧 은'이란 말씀은 농사일에서 나온 비유로서, 가축이 주인의 인도와 통제를 따르지 않고 고집을 부리는 것을 가리킵니다. 이것은 바로 이스라엘 백성들의 상태에 잘 어울리는 표현이었습니다. 한편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몸을 단장하지 않은 것은 애도의 표현입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마지막으로 취할 수 있는 행동이었습니다.
a. 슬퍼하는 이스라엘 백성들(민14:39)
b. 몸을 단장하지 않음(삼하19:24)

2. 회막

1) 여호와를 앙모하는 자
회막은 성막이 만들어지기 전에 임시로 성막 역할을 하던 것이었습니다. 그것을 잠시나마 진 밖에 친 것은 또 하나의 형벌이었습니다. 그 곳에서 모세는 하나님과 친밀한 사귐을 가지면서 백성들을 위해 중재합니다. 우리는 모세의 모습에서 여호와를 앙모하는 자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회막은 바로 여호와를 앙모하는 자들이 나아가서 하나님과의 사귐을 가졌던 곳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러한 하나님과 가까이 사귈 많은 기회를 범죄 때문에 잃어버렸던 것입니다.
a. 진 밖으로 분리됨(레6:11)
b. 여호와를 앙모함(시40:16)

2) 눈의 아들 여호수아
모세가 회막으로 나아갈 때에 백성들은 다 일어나 자기 장막문에 서서 모세가 회막문에 들어가기까지 바라보며, 구름 기둥이 내려 회막 문에 서며 여호와께서 모세와 말씀하시는 것을 보고 멀찍이서 경배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이었습니다. 하나님 백성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나 눈의 아들 여호수아는 회막을 떠나지 아니했습니다. 이는 여호수아가 미래의 지도자로 어떻게 준비되는가를 보여 줍니다.
a. 구름 기둥(출40:34)
b. 하나님을 경배함(시33:8)

3. 하나님의 영광

1) 모세의 기도와 하나님의 약속
모세는 지금까지 계속 유지해 온 하나님과의 친밀한 사귐의 터 위에서 하나님께 간구했습니다. 그의 기도 내용은 하나님의 백성을 올바로 인도할 수 있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또한 이 족속을 주의 백성으로 여기시며 주의 영광을 보여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간구를 들으시고 그와 친히 함께 가리라고 말씀하십니다.
a. 모세와 하나님의 대면(민12:8)
b. 친히 함께 가시는 하나님(사63:9)

2) 하나님의 영광
하나님께서는 은혜 베풀 자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긍휼히 여길 자에게 긍휼을 베푸시는 분입니다. 모세는 하나님께 자기와 백성들에게 징표를 보여 줄 것을 구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위엄과 거룩하심을 보고 살아남을 자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모세는 여호와께서 친히 선포하시는 말씀을 들었고 비록 잠시나마 그 영광의 자락을 보았습니다.
a. 하나님의 영광(딤전6:16)
b. 하나님을 봄(창32:30)

결론
하나님 없이 살 수 없는 인간들이 스스로의 힘으로 살 수 있는 것처럼 교만히 행합니다. 또한 하나님을 믿는다는 신자들은 참 하나님을 외면한 채 살아갑니다.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한 채 말입니다. 주님의 은혜와 긍휼이 우리에게 지금 필요함을 고백케 됩니다.

 
[단어해설]
 1절. 올라가라. '출발하다'라는 뜻을 지닌 <hl;[;:알라>는 가나안을 향한 출발을 뜻한다.
 
4절. 황송한 말씀.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절교 선언을 가리킨다. 문자상 <[r:h; rb;D:h':하다바르 하라>는 '악한 말씀'을 의미. 단장하지 아니하니. 장신구를 몸에서 떼어 낸 상태. 이는 이스라엘의 통회의 모습을 나타낸다.
 
6절. 호렙산. 언약의 산으로 '시내 산'과 동일.
 
7절. 회막. 문자상 <d[e=/m lh,a:오헬 모에드>는 '회집의 장소'로서 '만남의 장막'이란 뜻이다. 하나님의 임재 장소로 여겨졌다.
 
9절. 구름 기둥.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물로써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위로가 되었다.
 
11절. 친구. '동료'를 의미하는 <h[,rE:레에>는 모세를 대하는 하나님의 모습을 나타낸다. 대면하여. 모세와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를 의미. 원어 <!ynIP; Ala, !ynIP;:파님 엘-파님>은 '얼굴과 얼굴을 마주 대하여'라는 뜻.
 
12절. 나와 함께 보낼 자. 새로운 동역자를 구하는 모세의 기도에 하나님은 여호수아를 세워 주셨다.
 
13절. 주의 길. 여호와의 뜻을 말함. 즉 인간 삶의 기준이 되는 규례를 의미.
 
14절. 내가 친히 가리라. '친히'는 '얼굴'이란 뜻으로 문자적으로는 '나의 얼굴이 가겠다'이다. 모세의 기도에 응답하신 하나님의 은혜가 보인다. 너로 편케 하리라. 안식을 주시겠다는 뜻. 모세의 수고를 덜어 주시려는 하나님의 의지의 표현이다.
 
16절. 구별하심이. 구별은 '차이를 두는 것'을 나타낸다. 즉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각별하신 사랑을 드러낸다.

 
[신학주제]
 하나님의 동행 거부. 본장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들의 조상에게 약속하신 언약의 땅으로 들어가라고 명령하셨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동행하지 않으시겠다고 선언하셨다. 이는 전장에서 나타난 이스라엘 백성들의 우상 숭배 때문이다. 이에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은 슬퍼하며 하나님께 동행하시기를 간구하였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을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에도 불구하고 슬퍼하며 끝까지 하나님의 동행을 요구한 것은 하나님께서 같이 가시지 않으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의 자연적인 환경이 아무런 의미가 없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가나안 땅은 그 자체의 토양이나 환경보다 언약이라는 측면에서 축복의 땅으로 나타난다. 즉 축복의 기준은 하나님의 임재임을 의미하는 것이다.

 
[영적교훈]
 본장에서 자신들과 함께 가나안으로 가시지 않겠다는 하나님의 선언을 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슬퍼하며 모든 단장품을 제하고 함께 가시기를 간구하였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함께 가시지 않으면 가나안의 풍요로움은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아무리 척박한 땅이라도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그 곳이 축복의 장소인 것이다. 이는 오늘날 축복의 조건을 세상적인 부귀 영화에서 찾으려는 태도가 어리석은 것임을 교훈해 준다. 하나님 없는 그러한 것들은 오히려 사람을 죄악으로 인도하여 멸망을 가져올 뿐이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세상의 쾌락과 권세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과 동행함을 인하여 기뻐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I. 책망받은 이스라엘 33:1-6

 1. 하나님이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의 자손들에게 주신 메시지(1,3,5)
  (1) 하나님은 그들의 본성을 밝히실 때 그들에게 '목이 곧은 백성'이라는 굴욕적인 호칭을 사용하셨다(3,5절). 하나님은 그들에게 율법의 멍에를 지우고 그들을 언약의 끈으로 매려 하셨지만 그들은 목이 너무 곧아서 굽힐 줄 몰랐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심판하실 때 그들의 성품에 따라 심판하신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사람들이 하는 일을 알고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성품까지도 알고 계시다. 그리고 우리는 사람으로부터 나온 것을 알고 있지만 하나님은 사람 속에 있는 것까지도 알고 계시다. 그러므로 목이 곧은 것보다 더 하나님을 진노케 하는 것은 없는 것이다.
  (2) 하나님은 그들이 마땅히 받아야 할 벌이 무엇인지를 말씀해 주셨다. 만일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범한 죄에 따라 그들을 처벌하셨다면 그는 그들을 순식간에 진멸하셨을 것이다.
  (3) 하나님은 그들로 하여금 그들이 머물렀던 곳을 '떠나서' 가나안 땅으로 '올라가라'고 명령하신다(1절).
  (4) 하나님께서 비록 가나안 땅을 주겠다고 하신 아브라함과의 계약을 실행하겠다고 약속하셨을지라도 그의 임재를 나타내는 특별한 징조는 더 이상 주지 않겠다고 말씀하신다. "너희를 보호하기 위하여 내가 사자를 네 앞서 보내리라. 그렇지 않으면 악한 천사가 너희를 곧 멸망케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너희와 함께 올라가지 아니하리니…내가 중도에서 너희를 진멸할까 염려 함이니라"(2,3절). 공의의 하나님은 "그들과 약속을 끊고 그들을 진멸하겠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자비의 하나님께서는 또한 '에브라임이여 내가 어찌 너를 놓겠느냐'라고도 말씀하시는 것이다(호 11:8).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들에게 '너희는 단장품을 제하라 그리하며 내가 너희에게 어떻게 할 일을 알겠노라'라고 말씀하신다(5절). 이것은 곧 하나님의 심판을 받지 말고 하나님의 자비를 받을 수 있도록 회개하라는 뜻이다. 여기서 회개하도록 촉구하는 것은 그들을 위하여 베풀 자비가 마련되어 있음을 분명하게 알려 주는 것이다.
 2. 이 메시지를 받아들이는 백성들의 우울한 분위기(4,6)
  (1) 백성들은 슬퍼했다(4절). 그들은 그들에게서 하나님을 떠나가게 만든 자신들의 죄를 슬퍼했고 또한 그 죄로 인하여 하나님을 떠나시게 했다는 사실을 슬퍼했다. 자기의 죄를 진실로 회개하는 사람이 그 죄로 인하여 생기는 모든 고통스러운 열매와 결과 가운데서 가장 슬퍼하고 두려워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자기를 떠나신다는 사실이다.
  (2) 큰 수치와 굴욕의 표시로서 옷을 입지 않은 사람들은 '그 몸을 단장하지 아니'하였고(4절) 옷을 입고 있던 사람들은 '호렙산에서부터 그 단장품을 제하였다'(6절). 여기서 '호렙산에서부터' 라는 말은 '호렙산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에서'라는 말로 해석될 수도 있는데 이 해석을 받아들이면 누가복음 18:13에 나오는 세리처럼 멀리 서서 있는 것을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Ⅱ. 여호와께서 임하신 회막 33:7-11

  (1) 백성들의 수치스런 행동으로 인하여 그들이 받게 된 진노의 한 표적 : 모세가 항상 장막을 취하여 진 밖에 쳐서 진과 멀리 떠나게 하고. 이 장막은 하나님을 알현하고 그의 뜻을 들으며 그에게 질문을 하던 곳으로서 (말하자면) 이스라엘 진영의 집회소였다. 그러므로 이 장막을 '진 밖에 쳐서 멀리 떠나게' 했다는 것은 그들이 장막을 지키기에 적합치 못하므로 하나님과의 화해가 이루어지지 않는 한 장막이 그들에게로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그들에게 나타내려는 것이다.
  (2)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그들과 화해하고자 하신다는 소망을 갖게 하는 여러 가지 사실들이 있었다.
   1)비록 장막은 진영 밖으로 이전되었지만 여호와를 앙모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그 장막을 따를 수 있도록 허용되었다(7절). 그들이 '진 바깥'으로 나아가 여호와께서 그들에게로 돌아오시기를 간구할 수 있는 한 장소가 정해졌다. 하나님께서는 자비를 베풀고자 하실 때 기도를 하도록 북돋아 주신다.
   2)모세는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에서 중재하는 일을 수행했다. 그러므로 그는 아마도 하나님과 협상 장소로서 호렙산과 진영 사이에 세워져 있었을 회막으로 나아갔고(8절) 또한 그 안으로 들어갔다(9절).
   3)백성들은 매우 선한 마음을 품고 있었을 뿐 아니라 하나님과의 화해를 구하는 열심을 지니고 있었던 것 같다.  ①모세가 회막으로 나아갈 때 백성들은 그들이 전에 무시했었던 그를 존경하고 또 전적으로 그의 중재에 의지한다는 표시로서 그가 회막에 들어가기까지 그를 '바라보았다'(8절).  ②그들은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구름 기둥을 보자 '다 일어나 각기 장막문에 서서 경배하였다'(10절). 그들이 장막문에서 경배를 드린 것은, 과거에 그들이 공공연하게 금송아지를 경배했던 것처럼 하나님과 모세에 대해 공개적으로 존경심을 표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는 것을 명백히 나타내고 있다.
   4)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과 화해하시고 또한 자신이 기꺼이 화해하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나타내셨다.  ①하나님은 협상 장소인 회막에서 모세와 만나셨다(9절). 만일 우리가 진심으로 하나님을 만나기 위하여 하나님께로 나아간다면 그는 자비를 베푸셔서 우리를 만나러 오실 것이다. ②하나님은 '모세와 말씀하셨으며'(9절) '사람이 그 친구와 이야기함 같이…모세와 대면하여 말씀하셨다'(11절). 이것은 하나님께서 다른 어떤 선지자보다 모세에게 보다 명료한 증거의 빛으로 자신을 계시하셨을 뿐만 아니라 특별한 애정과 은총을 나타내시면서 자신을 게시하셨음을 암시해 주고 있다. 모세는 다시 진으로 갔으나, 속히 회막으로 돌아오려 했기 때문에 회막에 여전히 여호수아를 남겨 두었다. 왜냐하면 영광의 구름 기둥이 회막문에 서 있는 동안 그 회막을 비워두는 것은 옳은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9절).

 

Ⅲ. 하나님의 영광을 본 모세 33:12-23

 회막문으로 되돌아간 모세는 하나님께 두 가지의 큰 은혜를 겸손하고도 끈질기게 간구하였다.
  (1) 그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악된 도발에도 불구하고 가나안으로 가는 나머지 여정에 동행해 주실 것을 하나님께 매우 열심히 간구했다. 이제 모세가 얼마나 훌륭하게 하나님 앞에 이것은 내놓고 있는지 살펴보자. 즉 그가 어떻게 간구하며 또 어떻게 그 간구를 성공시키는지 살펴보자.
   1)모세의 간구 방법 : ①모세는 하나님이 그에게 이 백성을 인도하여 올라가라고 명령하셨음을 강조하고 있다(12절). 즉 다음과 같은 말로써 간구를 시작했다. "여호와여 저를 이 일에 쓰신 것은 바로 여호와 자신이십니다. 그런데 주께서 저를 인정하시지 않으려는 것입니까?" ②모세는 그 자신이 하나님과 맺고 있는 관계를 활용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이 그를 사랑하고 있음을 나타내 달라고 간구했다. 주께서 전에 말씀하시기를 나는 이름으로도 너를 알고 너도 내 앞에 은총을 입었다 하셨사온즉 내가 참으로 주의 목전에 은총을 입었사오면 원컨대 주의 길을 내게 보이사(12,13절). 그가 이 말을 통해 하나님께 주장한 것은 다음과 같다. "여호와여 만일 주께서 저를 위하여 어떤 일을 하고자 하신다면 백성들을 위하여 그 일을 해 주시 옵소서."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 주 예수께서도 하나님이 항상 기뻐하시는 자로서 중재를 위해 하나님께로 나아가시어 하나님이 싫어하실 수밖에 없는 우리를 위해 자비를 얻어내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엡 1:6) 죄 사함을 받게 되는 것이다.  ③모세는 그의 백성들이 하나님께 전혀 합당하지 않을지라도 하나님과 어느 정도는 관계를 맺고 있다고 하나님께 완곡히 고하고 있다. "주께서 기적을 행하셔서 구속하시고 주와 언약을 맺은 이 족속을 주의 백성으로 여기소서. 여호와여, 그들은 주의 백성이니이다. 그들을 버리지 마옵소서." 자식의 죄로 인하여 진노한 아버지는 "내 자식이 어리석고 완악하지만 그가 내 자식이기 때문에 내가 그를 버릴 수 없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④모세는 하나님께서 '내 가 친히 가리라'고 말씀하셨을 때, 그는 하나님의 동행없이는 살 수도 움직일 수도 없는 것처럼 그 말씀을 붙들었다. 주께서 친히 가지 아니하시려거든 우리를 이곳에서 올려 보내지 마옵소서 (15절).  ⑤모세는 이 일이 하나님의 영광과 관련되어 있다는 주장을 함으로써 끝을 맺고 있다(16절). "나와 주의 백성이 주의 목전에 은총을 입어 천하 만민 중에 구별되었음을 열방에게 무엇으로 알려지리이까? 우리가 진실로 이와 같이 주께서 우리와 함께 행하심으로 드러나는 것이 아니니이까?"
   2)모세가 그의 간구를 성공시킨 방법 : ①그는 그 자신에게 베풀어 주실 하나님의 은혜를 확신할 수 있었다(14절). 내가 너로 편케 하리라. 모세는 결코 가나안 땅에 들어 가지 못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쉼을 주시겠다는 약속을 이행하셨다(단 12:13).  ②그는 하나님께서 그를 위하여 그의 백성들에게 은혜 베푸실 것을 확신했다. 인자하고 관대한 정신을 가진 사람들은 자기들만 하늘 나라로 가는 것을 만족스럽게 여기지 않고 오히려 그의 모든 친구들도 하늘 나라에 갈 수 있기를 바란다. 하나님은 그런 사람이 구하는 한 후히 주시고 책망치 않으신다. 모세의 기도의 능력을 보라. 우리도 이것에 힘입어 구하고 두드려야 한다. 그리고 '기도에 항상 힘쓰되 낙심치 말아야 한다.' 모세를 통하여 예표된 그리스도의 중재의 효력을 보라. 그리스도께서는 살아계셔서 그를 통해서 하나님께로 나아오는 모든 자들을 위해 중재하신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중재가 유효한 근거를 보라. 그것은 순전히 그리스도 자신의 공로이지 그가 중재하는 사람들의 공로가 아니다. 그것은 주께서 '너도 내 앞에 은총을 입었다'고 하셨기 때문이다. 이제 그 문제는 해결되었다. 하나님은 그들과 완전히 화해하셨고 그의 임재를 알리는 구름 기둥은 그들에게로 돌아왔으며 그들과 함께 계속 머물게 되었다. 모든 일이 다시금 잘 되었다. 따라서 우리는 이후로 금송아지에 대한 언급을 전혀 대할 수 없게 된다.
  (2)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자 모세는 '주의 영광'을 보여 달라고 간구했으며 이 또한 하나님의 허락을 받았다.
   1)모세의 겸손한 요청 : 원컨대 주의 영광을 내게 보이소서(18절). 모세는 하나님의 은혜를 계속 받기 위하여 놀라울 정도로 하나님을 설득했다. 그리고 그의 기도의 응답을 받음으로써 계속적으로 하나님께 구할 수 있는 용기를 얻었다. 따라서 기도의 응답을 받으면 받을수록 그는 더 많은 것을 구했다. 주의 영광을 내게 보이소서. 이 말을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나로 하여금 주의 영광을 보게 하소서"라는 뜻이다. 그리고 이 말은 다시 말해서 "어떤 방법으로든 그것을 보게 해주시고 나로 하여금 그것을 보고도 견딜 수 있게 해주소서"라는 뜻이다. 물론 모세는 하나님의 본체가 육신의 눈으로 보여질 수 있다고 생각할 만큼 무지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는, 이제까지 구름기둥과 불 기둥으로부터 하나님의 음성만을 들었으므로 하나님의 영광의 어떠한 모습, 즉 하나님께서 그를 만족시키기에 적합하다고 여기시는 그러한 영광의 모습을 보고자 열망했던 것이다. 혹자는 이에 대해 모세가 그의 중재의 징표로서 그리고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약속하신 그의 임재를 보증하는 것으로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자 했으나 자신이 구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몰랐다고 생각한다.
   2)모세의 이 요청에 대한 하나님의 자비로운 응답 : ①하나님은 주시기에 적합치도 않으며 모세가 감당할 수도 없는 것은 들어 주지 않으셨다. 네가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니. 하나님의 영광을 완전히 본다는 것은 현 상태의 모든 인간의 기능으로는 감당해낼 수 없는 것으므로 비록 모세라 해도 그 권능을 견디지 못했을 것이다. 하나님에 대한 지식과 기쁨 중에 저 세상에 가서야 비로서 주어지는 것이 있다. 그때 우리는 '그의 계신 그대로 볼 것이다'(요일 3:2). 그동안 우리는 하나님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는 부분의 높이와 모르고 있는 부분의 깊이를 흠모하자.  ②하나님은 충분히 만족하게 될 만한 것을 허락하셨다.  ㉠모세는 자신에게 기쁨을 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다(19절). 내가 나의 모든 선한 형상을 네 앞으로 지나게 하고. 하나님은 이스라엘과의 화해에 있어서 자신이 선하시다는 놀라운 증거들을 그에게 주셨었다. 그러나 그것은 흐름에 있어서의 선하심일 뿐이었다. 그러나 이제 그는 원천에 있어서의 선하심, 즉 모든 선한 형상을 보여 주고자 하신다. 이것은 모세의 요청을 만족시키고도 남는 응답이었다. 모세가 '주의 영광을 내게 보이소서'라고 요청하자 하나님은 '내가 나의 선한 형상을 보이리라'고 대답하셨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선한 형상이 바로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그의 위엄의 영광보다는 그의 자비의 영광을 통해서 자신을 더 많이 알게 하신다. 하나님은 결코 "내가 진노하기를 원하는 자에게 진노를 발하겠다"고 말씀하시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의 진노는 항상 공정하고 거룩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하나님은 '나는 긍휼히 여길 자에게 긍휼을 베푸느니라'라고 말씀하신다. 왜냐하면 그는 항상 아무 값없이 은혜를 베푸시기 때문이다. 그는 결코 그의 특권을 이용하여 저주를 하는 분이 아니시며 다만 그것을 이용하여 구제를 하는 분이시다.  ㉡모세는 자신이 감당할 수 있으며 또한 만족할 수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첫째로 모세는 반석 틈에서 안전하게 있어야 했다(21,22절).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였다'(고전 10:4).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지식은 오직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다. 이 반석 위에 서서 보호를 받는 사람들 외에는 어느 누구도 온전하게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없다. 둘째로 모세는 세상의 어느 누구보다도 하나님에 대해 많은 것을 보았으나 하늘에 있는 자들이 본 것만큼은 보지 못했다. 우리가 우리보다 앞서 가는 사람을 바라볼 때 그의 뒷모습밖에 볼 수 없는 것처럼 모세도 하나님의 모습을 다 본 것이 아니고 지나가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언뜻 본 것에 불과했다. 우리가 우리의 왕이신 하나님의 사역 속에서 하나님이 행하신 일들을 볼 때 말하자면 우리는 그의 뒷모습만을 보는 것이다. 만일 우리가 이 세상에 머무는 동안 하나님께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그의 모습들을 성실하게 활용한다면, 보다 밝고 보다 영광스러운 모습이 조만간 우리 앞에 전개될 것이다. 왜냐하면 '있는 자가 더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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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 출애굽기 성막 뜰 기구와 성막 재료[출 38장] 2017.02.24
87 출애굽기 성물의 제작[출 37장] 2017.02.24
86 출애굽기 성막의 건축[출 36장] 2017.02.24
85 출애굽기 성막 재료와 백성들의 헌물[출 35장] 2017.02.24
84 출애굽기 두 번째 십계명과 언약의 갱신[출 34장] 2017.02.24
» 출애굽기 모세의 기도와 하나님의 영광[출 33장] 2017.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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