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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과 사도직에 대한 바울의 변증[갈 1장]
 
[내용개요]
 본서는 거짓 교사들의 파괴적인 선동과 미혹을 논박하고 복음의 순 수성을 지키고자 기록된 서신인 만큼 시종 일관 전투적이요, 변박적인 어조를 띠고 있다. 이러한 문체적 특징은 특히 본 서신의 서두인 본장의 전반에 걸쳐 부각되어 있다 바울은 본 서신의 서두에서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제대로 인사할 겨를도 없이 분명하고 날카로운 어조로 직접적인 경고를 주고 있다. 이렇듯 본장과 본 서신의 전체에 걸쳐 바울이 가일층 음성을 높이고 있는 것은 복음이 변질되거나 파괴당하려는 갈라디아 교회의 긴급한 상황 때문이었다. 이러한 본장의 내용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된다. 첫째 단락은 바울이 자신의 사도직을 부인하고 복음과 율법주의를 혼동하는 대적자들에게 선전 포고를 하며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경고를 하는 부분(1-10절)이며, 둘째 단락은 이신득의의 교리를 바울 자신에게 우선적으로 적용시켜 간증의 형식으로 설명한 부분이다(11-24절).

 
[강  해]
 바울은 자신의 사도직에 대한 회의를 품고 그리스도의 복음을 왜곡시켜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거짓 교사들에 대해 하나님의 저주가 있을 것을 선포하면서 오직 자신이 증거한 그리스도의 복음만이 유일한 구원의 복음임을 강조했습니다. 이를 위해 자신의 사도직과 증거하는 복음이 사람으로 말미암지 않고 그리스도로 말미암았음을 변증하였습니다.

1. 바울의 인사와 찬양
 
1) 바울의 인사와 축원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에 편지하면서 자신의 사도 됨이 인간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고 오직 그리스도와 죽은 자 가운데서 그리스도를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된 것임을 밝습니다. 이는 바울의 사도권에 대해 회의를 품는 자들이 갈라디아 교회에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바울이 편지 초두에서 자신의 사도권을 강조한 것은 서신 내용의 권위를 세우기 위함이었습니다. 본 서신의 내용이 중요한 교리에 관한 내용이었기에 바울은 자신의 진술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말미암음임을 증거한 것입니다. 또한 바울은 교회에 대한 서신에서 항상 그러하듯이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서 그리스도로 좇아 은혜와 평강이 성도들에게 임하기를 기원하였습니다.
a. 하나님의 뜻을 따라 됨(고전1:1)
b.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은혜와 평강(고전1:3)

2) 그리스도에 대한 찬양
바울은 하나님의 뜻을 좇아 죄인들을 구속하기 위해서 자기 몸을 드린 그리스도를 찬양하며 영광을 돌렸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심은 죄악 속에 있는 자들을 구원하시기 위함이었고, 그로 말미암아 성도들이 악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는 성도에게 영원한 찬송 제목이 됩니다.
a. 만물의 주이심(롬11:36)
b. 악한 일에서 건져 주심(딤후4:18)

2. 복음의 유일성

1) 다른 복음은 없음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의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버리고 다른 복음을 좇는 것을 이상히 여긴다고 진술하면서 자신이 증거한 그리스도 외에는 다른 복음이 없음을 강조했습니다. 바울은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들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왜곡시켜 교회를 어지럽히려 하는 자들이라고 말씀했습니다. 당시 갈라디아 교회에 나타난 거짓 교사는 그리스도의 복음만으로는 구원을 받을 수 없고 율법을 행하는 자만이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가르쳤습니다. 이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면으로 부정하지는 않지만 결국엔 그리스도의 복음의 구원에 있어서의 충족성을 부인하는 것으로서 복음을 부정하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a. 구원의 다른 도리(행15:1)
b. 그리스도의 진리를 부인함(요이1:7)

2) 거짓 교사가 받을 저주
바울은 복음의 유일성을 강조하기 위해 자신이 전한 그리스도의 복음 외의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는 천사라 할지라도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바울은 반복해서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의 저주를 선언함으로써 그리스도의 복음의 유일성을 재차 강조했습니다. 바울은 이러한 진술을 통해 거짓 교훈을 받는 자의 결국에 대해서도 경고한 것입니다. 그리스도 외의 복음을 전하는 자는 양의 탈을 쓴 이리와 같아서 많은 사람을 멸망의 길로 끌고 가므로 하나님께 심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a. 영벌에 처하게 됨(마25:41)
b. 탐심으로 전함(벧후2:3)

3) 하나님의 기쁨을 구하는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자신이 하나님을 좋게 하기 위하여 오직 그리스도의 진리만을 선포함을 밝혔습니다. 거짓 교사들은 사람을 좋게 하여 자신들의 교훈을 받도록 복음을 왜곡시키지만 바울은 오직 진리만을 증거함으로써 하나님의 뜻만을 구하였던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사람들의 기쁨을 구하였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종은 자신의 욕심과 기쁨을 구하지 않고 주인의 기쁨과 뜻만을 구하는 것입니다. 이는 그리스도의 종된 모든 자들이 취하여야 할 자세입니다.
a. 하나님만 기쁘시게 함(살전2:4)
b. 주를 기쁘시게 하려고 힘씀(고후5:9)

3. 바울의 사도직에 대한 변증

1) 예수 그리스도께 받은 복음
 
바울은 자신이 받은 복음이 사람으로 말미암음이 아니라 그리스도로 말미암았음을 증거하기 위해 자신의 사도직에 대해 변증하였습니다. 바울의 사도직케 문제가 제기 된 것은 그가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계실 때 부름 받은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승천 후에 부름을 받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자신이 그리스도께 부름을 받아 사도들을 만나러 가지 아니하고 아라비아로 갔다가 다시 다메섹으로 돌아갔음을 진술함으로써 자신이 받은 계시가 그리스도께 직접 받은 것임을 증명하였습니다. 바울이 이와 같이 자신의 사도권을 변증한 목적은 사적인 권위를 인정받고 싶어서가 아니라 자신이 증거하는 복음의 진실성을 증거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바울은 또한 자신은 율법주의에 매여 있었으나 하나님께서 어머니의 태로부터 자신을 택하시어 은혜로 부르셨음을 고백했습니다.
a. 공교하게 만든 신화가 아님(벧후1:16)
b.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않음(벧후1:21)

2) 삼 년 만에 예루살렘을 방문한 바울
바울은 자신이 다메섹에서 예수를 만난 후 아라비아로 가서 삼 년 동안 있다가 예루살렘을 방문하여 베드로와 야고보를 만났다고 증거했습니다. 이러한 바울의 증거는 자신이 다른 사도들로부터 교훈을 받아 사도 행세를 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 직접 계시를 받았음을 증거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래야만 자신이 전하는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은 잘못된 것임을 성도들이 믿을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a. 아라비아에 거함(갈4:25)
b. 하나님께 택함 받음(행9:15)

결론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복음 외에 어떠한 교훈도 사단의 유혹임을 깨달아 오직 말씀 중심의 신앙을 소유해야 합니다. 또한 모든 삶에 있어서 사람을 기쁘게 하기 위함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하여 살아감으로써 산 제사인 영적 예배를 드려야 하겠습니다.

 
[단어해설]
 2절. 교회. 원어 <ejkklhsiva:에클레시아>는 원래 '회중, 무리'라는 뜻인데 신약에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백성이 된 성도들의 모임을 가리킨다.
 
5절. 세세토록. '영원부터 영원까지, 세세토록'이라는 의미로 쓰여 영원에 대한 강한 개념을 강조하는데 바울 서신과 요한계시록에 많이 나타나 있다.
 
7절. 다른 복음. 바울이 전한 은혜의 복음, 즉 이신득의에 대한 구원과는 대조적으로 율법을 행함으로 의롭게 되고 구원을 얻게 된다는 유대인들의 주장을 가리킨다.
 
11절. 알게 하노니. 바울이 전한 복음이 사람의 뜻이나 사람의 권위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계시로 말미암은 것으로 하나님의 은총에 의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12절. 계시. 계시는 구약에서 준비된 것으로서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과 부활에서 실현되었고 재림시에 이루어질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을 나타내는 것을 의미한다.
 
14절. 유전. '대대로 내려온 전통'을 뜻하는데 이는 철저한 율법주의의 교리로서, 율법의 행위로 구원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21절. 길리기아. 소아시아의 동남부 해안 지역에 위치한 중요 지역으로 동쪽은 아마누스 산맥, 북쪽과 서쪽은 타우르스 산맥, 남쪽은 지중해에 의해 경계지어져 있다. 이곳은 바울의 고향으로도 유명하다.

 
[신학주제]
 사도권 주장의 이유. 본 서신서의 인사말에 드러나는 사도권 주장의 이유를 세 가지로 들 수 있다. 첫째, 시대적 요청을 들 수 있다. 복음 증거로 말미암아 구약의 전통적 규례들이 재해석되거나 폐지되고 신약 교회는 아직 확고한 터전을 굳히지 못한 상태였기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진리를 굳건히 수호할 만한 강력한 권위가 절실히 요청될 수밖에 없었다. 둘째, 교회 내의 질서와 체계를 확립하기 위함이다.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세우기 위해 주어졌던 여러 직분들 가운데 사도직은 으뜸이라 할 만하다. 따라서 사도들은 전교회의 성장과 단합을 위해 신적 권위에 입각한 강한 지도력을 발휘하였던 것이다. 셋째, 서신서의 영감과 권위를 주장하기 위해서다. 성령의 영감은 복음 증거와 말씀에 대한 깨달음뿐만 아니라 서신서 기록 과정에도 작용하였다. 바울이 서신서를 쓰면서 성경을 기록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었는지는 확실치 않다. 하지만 그들은 그들의 서신에 기록된 각종 권면과 교리들이 구약 선지자들을 통해 말씀하신 바로 그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영감 되었다고 하는 확신을 가졌을 것임에 틀림없다. 이와 같은 세 가지 이유로 바울은 자신의 사도직을 주장했다.

 
[영적교훈]
 바울이 자신의 회심 과정 및 이방인의 사도로서 소명을 받은 사실을 언급하는 것은 그의 그리스토인 됨이 인간적인 동기를 따라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부르심에 의해서임을 밝히기 위함이다. 오늘날 각 성도들도 그리스도인이라는 호칭이 자신에게 보다 유리한 사회적 위치를 확보해 주기 때문에 교회에 출석하고 있지는 않은지 반성해 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인간적 만족을 위함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I. 서론 1:1-5
 
 1.이 서신의 발신인(1,2)
 사도된 바울은 함께 있는 모든 형제로 더불어 : 첫째, 바울은 그의 직책과 그 직책을 얻게 된 입장에 대해 일반적인 설명을 하고 있다. 바울은 사도의 직책을 가졌다. 그는 어떻게 하여 그 직책을 얻게 되었는지를 그들에게 알리며 또한 그 직책을 위임받는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뜻이었음을 주장한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에 의하여 사도된 자이며,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직접 사도의 직책을 위임받았기 때문에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사도로 위임받은 것이다. 더군다나 그가 사도로 불리움을 받은 것은 그리스도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후였다. 즉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가 하늘에 계실 때 그로부터 불리움을 받은 것이다, 둘째, 바울은 이 서신을 쓸 때 그와 함께 있었던 모든 형제들을 열거하고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는 그가 가르쳐서 이제 그들이 확신을 얻으려는 교리에 대해서 그들도 그와 같은 의견을 가지고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
 2. 이 서신의 수신인(2)
 이 수신인들은 모두 그들 가운데 몰래 들어온 유혹하는 자들의 술수에 의하여 다소 타락하였던 것같다.
 3.사도의 기도(3-5)
 은혜는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선하신 뜻과 우리를 위한 그의 선하신 행위를 내포하며 평강은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한 내적 위로와 외적 번영을 모두 의미한다.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의 그리스도인들을 위하여 다음과 같은 것들을 기원하고 있다. 첫째는 은혜요 그 다음을 평강이다. 왜냐하면 은혜 없이는 참 평강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언급하면서 바울은 그리스도의 사랑에 대해서 결코 지나쳐 버릴 수 없었다(4절). 이 현실적인 세상은 악한 세상인데 이것은 인간의 죄로 말미암아 그렇게 되었던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이 악한 현실의 세상으로부터 구원하셨다. 이것은 그의 백성을 이 악한 세상으로부터 옮기신다는 말이 아니라 이 악한 세상의 권세로부터 그들을 구원한다는 말이다.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이 일을 행하신 것이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따라' 행한 것임을 우리에게 알리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우리의 아버지로 생각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 주 예수의 아버지이신 것과 같이 주 예수 안에서 주 예수로 말미암아 모든 신실한 신자들의 아버지이시기도 한 것이다. 바울은 그리스도께 진지한 찬양과 영광을 들리면서 서른을 끝마친다(5절).

 

Ⅱ. 갈라디아 교인들에 대한 바울의 책망 1:6-9
 
 [1] 바울은 그들의 신앙이 변질된 것에 대해 크게 염려하고 있다(6-9절). 그들의 신앙적 변질이 크게 책망을 받아야 하는 이유들은 이러하다. (1)그들은 '그들을 부르신 이를 떠났다. ' 그들은 사도 바울을 떠났을 뿐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도 떠난 것이다. 그들은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친절과 자비를 크게 남용한 죄를 범하였다. (2)그들은 비할 대 없는 큰 축복과 은혜에 동참하도록 부름을 받았던 자들이었다. 그들이 누렸던 큰 특권에 비래하여 그 특권을 포기한 죄와 어리석음이 컸던 것이다. (3)그들은 속히 복음에서 떠났다. 그들은 그들이 가졌다고 생각하였던 그리스도의 은혜에 대한 존경을 아주 빨리 버렸다. 이것은 그들의 연합을 보여 주는 실례인 동시에 그들의 죄를 더욱 심화시킨 것이다. (4)그들은 다른 복음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다른 복음을 좇았다. 그리스도의 복음을 왜곡시키지 않는 한 다른 복음은 절대로 있을 수 없다. 그리스도의 복음이 제시한 길 외에 다른 길로 천국에 이르려는 자들은 그들 자신의 큰 과오를 깨닫게 될 것이다.
 [2] 바울이 전파한 복음은 유일하고도 참된 복음이었다(8,9절). 그리하여 바울은 다른 복음을 전파하려는 자들이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선언하였다(8절). "만일 너희가 우리의 이름을 빙자하거나 천사로부터 복음을 받은 체 하여 너희에게 전파된 다른 복음을 받아들인다면 너희는 속은 것이다. 그리고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는 그가 누구든 상관없이 저주를 받게 된다."
 
 

Ⅲ. 사도직에 대한 바울 자신의 변명 1:10-24
 
 바울은 이 서신의 서두에서 이야기 한 것을 이제 더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앞에서는 그 자신을 가리켜 그리스도의 사도라 선언하였으나 이제 이곳에서는 앞에서 이야기 한 그 자신의 인격과 직책에 대한 주장을 더욱 직접적으로 입증하고 있다.
 [1] 자신의 사역의 범위와 계획으로부터 입증한다(10절). 앞에서 하나님으로부터 위임을 받아 행동한다고 고백했듯이 이곳에서 그가 우선적으로 의도하는 바는 죄인들을 다시 하나님께 복종시킴으로써 하나님의 영광을 더욱 찬양하는 것이다. 그는 사람들의 비위를 맞추려 하지 않았다. 그의 가장 큰 관심사는 하나님에게 인정을 받는 것이었다. 어떤 사람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 그러므로 그는 그리스도에 대한 신실함을 회생시키면서 사람들을 기쁘게 하려고 하지는 않았다. 바울은 이와 같이 그 자신이 그리스도의 신실한 사도임을 입증하고 있다. 복음의 사역자들이 가져야 할 최고의 목적은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데려가는 것이다. 복음의 사역자들이 그리스도의 신실한 종임을 입증하고자 한다면 사람을 기쁘게 하는 데 열심을 내어서는 안 된다.
 [2] 그들에게 전한 그 복음을 그가 어떻게 받았는지에 대해 설명함으로써 입증한다(11,12절). 사도의 특성 가운데 특별한 한 가지 사실은 그가 부름을 받고 교훈을 받아야 하며 그리스도 자신으로부터 직접 그 직책을 부여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바울은 복음에 대한 그의 지식뿐만 아니라 그 복음을 가르치는 권한도 직접 주 예수로부터 받았다. 이 사실에 대한 바울 자신의 입증은 다음과 같다. (1)자신이 회심하기 이전에 체험한 사실을 그들에게 이야기한다(13,14절). 그 자신이 아주 큰 변화를 일으켜 전에는 매우 심하게 반대하던 교리에 대해 신앙고백을 할뿐만 아니라 그 교리를 전파하게 된 이면에는 그에게 매우 특별한 어떤 것이 있었음에 틀림없다. (2)그리스도에 대한 지식과 믿음을 가지게 된 것과 사도의 직책에 임명된 놀라운 방법에 대해 그들에게 이야기한다(15,16절). 바울의 경우 그에게 일어날 갑작스럽고도 엄청난 변화와 그러한 변화를 가져오게 한 방법 속에는 특별한 어떤 것이 있었다. 즉 그는 그 만에 나타나신 그리스도를 체험하였다. 만일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나타나시지 않으시고 우리에게 단지 외적으로만 나타나신다면 큰 의의가 없다. 하나님은 바울로 하여금 이방인 가운데 그리스도를 전파하도록 하기 위하여 그 아들을 바울안에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셨다. 그러므로 그는 계시에 의한 그리스도인이며 또한 사도이기도 한 것이다. (3)그 이후 그가 어떻게 처신하였는지에 대해 그들에게 이야기한다(16-24절). 그는 혈육과 의논하지 아니하였다. 그는 당연히 복음에 대한 그의 지식과 그 복음을 전하기 위한 권위를 위해 어떤 다른 사람들에게 신세질 필요가 없었다. 바울은 그의 직책에 대해 확고한 주장을 하기 위하여 엄숙한 맹세로써 그의 설명을(20절) 확실하게 만들고 있다. 모든 일에 있어서 하나님에게 맹세하는 것이 정당하지는 않지만 중대하고 결정적인 일에 있어서는 맹세가 때때로 합법적일 뿐 아니라 우리의 의무이기도 하다는 것을 이곳에서 보여 주고 있다. 바울은 그 당시 유대에 있는 그리스도의 교회들과 친교가 없었으며 그들 역시 바울의 얼굴을 본 사람이 많지 않았다. 바울 안에서 이와 같이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다는 사실에 대한 보고는 유대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기쁨으로 충만케 했으며 그것은 또한 그들을 감동시켜서 그일 때문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었다.
 
 
 
갈라디아서 제 1장
=====1:1
 사람에게서 난 것도 아니요 사람으로 말이암은 것도 아니요 - 사도 바울은  자신의
사도권이 인간적인 기원이나 수단에 있지 않음을 분명히 밝힌다. 이처럼 자신의  사도
권을 편지의 서두에서 강조하는 것은 당시 바울이 예수의 열두 제자들 중에 하나가 아
니었다는 이유를 들어 바울의 사도성을 부인하는 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유
대주의를 고수하는 거짓 교사들로 당시 갈라디아 교인들을 심하게 미혹(迷惑)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한편 바울은 실제로 예수의 열 한 사도들처럼 예수의 지상 사역을  목
격하거나 맛디아처럼 공식적으로 선출되지 않았으나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목격하였고 이방인의 사도로서 소명을 받았으므로 조금도 사도의 자격에 부족한  것이
없었다(행 9:1-17;26:14-18). '바울의 사도직'에 대한 상세한 내용은 고전 4:1-5 주제
강해 '바울의 사도적 자기 인식과 고린도 교회의 오해'를 참조하라.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 본 구절에 해당하는 헬라어  본문
은 '알라'(*        , '그러나')로 시작되고 있어 바울의 사도권이 하나님으로부터 유
래되었음을 분명하게 드러낸다. 바울은 자신이 가진 사도권의 기원을  언급할  때마다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 아버지를 함께 언급하였다. 이는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가  하
나님과 동일한 권위를 가지신 분이심을 전제하였음을 보여준다.
   죽은 자 가운데서 그리스도를 살리신 - 바울은 자신의 사도직의 기원(起源)이 부활
하신 주님에 있음을 밝힘으로써 더욱 그의 논지를 분명히 한다. 주의 부활은 당시  초
대 교회성도들의 신앙의 근거요 '다메섹의 경험'(행 9:1-18)을 통해서 회심한 바울 자
신의 신앙의 근거였다(Longenecker).
   사도된 바울 - '아포스톨로스'(*                  , '사도')는 관사 없이  사용되
었다. 이는 사도 바울 자신만이 유일한 사도인 것은 아님을 암시한다. 사실 예수의 열
두제자들 외에 다른 사람들에게도 '사도'라는 칭호는 사용되었다.  원래  '아포스톨로
스'는 헬라어를 사용하는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개인이나 단체의 권익을 옹호하는 대표
자를 의미했으나 예수께서 오신 이후에는 예수의 복음을 전하는자들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었다(Boice). 한편 초대 교회는 사도가 되기 위한 조건으로 두 가지를 제시한다
(행 1:21-26). (1) 그리스도의 공생애 사역과 부활하신 주를 목격하고, (2) 그리스도
에 의해 복음 사역자로 택함받은 자가 그것이다.

=====1:2
  함께 있는 모든 형제 - 바울은 보통 그의 서신서의 서두에서 인사말을 할 때에  동
역자들의 이름을 밝히지만(고전 1:1;고후 1:1;빌 1:1;골 1:1 등), 단지  '형제들'이라
고 표현한 경우도 종종 있다(살전 1:4). 여기서 '형제들'이 누구를 가리키는지에 대해
서는 견해가 분분하다. (1) 혹자는 믿음으로 예수를 주로 고백하는 모든 성도들의  무
리라고 한다(Lenski). (2) 혹자는 바울과 함께 선교 여행 중에 있는 선교단 전체를 의
미한다고 한다(R.E. Howard). (3) 혹자는 바울을 지지하는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들
을 의미한다고 한다. (4) 혹자는 이 편지가 수리아 안디옥에서  남쪽 갈라디아에 보내
는 것이라고 보고 '형제들'이 안디옥 교회 지도자들을 가리킨다고 본다(Longenecker).
(5) 혹자는 이 편지가 고린도에서 북쪽 갈라디아에 보낸 편지라면 고린도에 선교가 시
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아 믿기시작한 사람들을 통틀어 가리킨다고  본다(Hendricksen).
위의 견해들 중(4),(5)번이 가장 타당한 듯하다.
   갈라디아 여러 교회들에게 - 다른 서신들에서 나타나는 수신자에 대한 칭찬과 존경
에대한 언급이 없는 것은 아마 그의 불편한 심기(心氣)가 작용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
교회들이 구체적으로 어느 교회냐 하는 문제는 논란이 많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가
1차 전도 여행 때(A.D. 47-48) 복음을 전했던 곳으로서 바울로부터 복음의 진리를  들
었던 교회들임에 틀림없다. 바울은 복음의 진리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곁길로  가고
있는 자들을 책망하기 위해 본서를 쓰고있다.

=====1:3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 - 바울은 하나님에 대하여 '아버지'(*
  , 파트로스)로 부르고 있으며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는 '주'(*            ,  퀴리
오스)라는 칭호를 붙여 쓰고 있다. 이 두 칭호는 사도 바울의 신앙을 대변할 뿐만  아
니라 초대 교회의 신앙 고백을 암시하고 있다. 여기서 '주'에 해당하는 헬라어  '퀴리
오스'는 히브리어의 '아도나이'(*        )와 같은 뜻으로 70인역에서는 '야웨'(*
   )를 읽을 때 사용되었다. 따라서 신약에서의 예수의 호칭 가운데 하나인 '주'의 헬
라어 '퀴리오스'는 구약의 '야웨'와 예수 그리스도가 본질상 동일함을 보여준다. 초대
교회 교인들은 예수를 '주'로 섬김으로써 유일한 믿음의 대상(행  5:14;9:42;11:24)으
로 여겼으며 또한 그들의 기도를 들어 응답하시는 분으로(행 7:59, 60:고후 12:8)  믿
었다.
   은혜와 평강 - '은혜'에 해당하는 헬라어 '카리스'(*          )는 죄로 인해 더러
워진 인간에게 자유와 용서를 베푸시는 하나님의 게속적인 선물을 뜻하며 '평강'의 헬
라어 '에이레네'(*            )는 히브리어의 '샬롬'(*        )으로 그리스도로  인
해 하나님과 죄인사이에 이루어진 평화를 뜻한다.

=====1:4
  이 악한 세대에서 - '세대'(*        , 아이온)의 시간적 개념은 현재적인  시점과
다가오는 시점을 포함한다. 그러나 본절에서의 '악한세대'는 '다가오는 세대' 즉 영원
한 축복의 세대와 대조를 이루는 것으로서 '이 세대'를  의미한다.  한편  유대인들은
'메시야의 오심'을 기준으로 이전 시대를 가리켜 '이 세대'(*                  ,  하
올람 하제)라 칭하였고 메시야가 도래한 이후의 시대를 '올 세대'(*
, 하올람 합바)라고 하였다. 결국 '세대'에 대한 신약의 개념은 구약에서  유래(由來)
된 것이다. 바울은 본절에서 이러한 맥락을 염두에 두고 '이 세대'를 언급하면서  '악
한'(*              , 포네루)이라는 형용사를 덧붙여 '이 세대'가 갖는 특성을  강조
하였다(Longenecker).
   자기 몸을 드리셨으니 - '자기 몸을 드리셨으니'에 해당하는 헬라어 '투돈토스  헤
아우톤'(*                                  )은 앞 구절의 '예수 그리스도'를  수식
하는 형용사절이다. 이렇듯 그리스도에 대해 설명하는 예를 다른 서신들의 서문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이는 갈라디아 교인들이 그리스도에 대해 가지고있는 오류가  독특하
였고, 따라서 바울이 이를 시정해 주기 위해 본 구절을 덧붙여 설명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Mare). 즉 바울은 복음의 진리를 희석시키고자 하는 유대주의자들에게 그리스도
의 죽음을 제시하여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외에 다른 것을 통해 구원받고자  하는
행위는 그리스도를 보내신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것이며,율법을 섬긴다는 이유로 예
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무시하는 행위는 하나님을 볘반하는 일임을 경고한 것이다.

=====1:5
  영광이 저에게 세세토록 있을지어다 - 바울은 십자가 위에서 우리의  죄를  위하여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영광을 돌리고 있다. 이는 흔히 인사말 뒤에 나오는 부드러
운 송영(頌詠)의 의미라기보다는 롬 1:25절에 나타나는 송영과같이 하나님과 아들  예
수에 대한 헌신과 충성다짐하는 의도를 지닌다.
   아멘 - 헬라어 '아멘'(*        )은 히브리어(*      , 아멘)에서 유래되었다.  바
울에게 있어서 아멘은 하나님께  대한  찬양이나  서신서의  결미어로  사용되었다(롬
16:27;빌 4:20 등). 본절에서 '아멘'은 하나님께대한 찬양과 영광이 영원히 있을 것이
라는 점을 강조하며, '이 악한 세대'의 일시적이며 덧없는 속성과 선명한 대조를 보여
준다.

=====1:6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 - '부르신 이'는 3절에 나오는 '우리  하나님
아버지'이시다. 구속 사역에 있어서 성부 하나님 구원의 계획을 세우시며(엡 1:3-5;벧
전 1:2) 또한 계획하신 대로 당신의 백성을 부르시는 분이시다(고전 1:9). 바울은  이
처럼 당신의 자녀를 부르시는 분이 삼위 중에 제일 위격인 성부 하나님이라는 것을 여
러번 강조했다(15절;롬 8:30;9:24;고전 7:15, 19;살전 2:12 등).  하나님이 성도를 부
르시는 것은 명백한 계획으로 되었고 그 계획은 완전하며  하나님의 의지에 속하는 것
으로 분명한 목적과  의도를 갖는다. 그러면 성부 하나님이 성도들을 부르시는 목적은
무엇인가? (1)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교제케 하기 위해서  부르셨다(고전
1:9). (2) 성도들로 하여금 부정한 가운데 있지 아니하고 거룩한 삶을 살도록  부르셨
다(살전 4:7). (3) 평화를 위하여 부르셨다(고전 7:15;골 3:15). (4)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영광을 위해서 부르셨다(살전 2:12). (5)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얻게  하기위하여
부르셨다(살후 2:13). 이와 같이 성부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을 부르셔서 구원을 얻게하
셨다. 그러나 갈라디아 교회에는 부르신 하나님으로부터 떠나는 자들이 있었다.  당시
갈라디아 교회에는 거짓된 유대주의자들이 하나님을 빙자(憑藉)하여 율법의 교훈들을
가르침으로 성도들을 미혹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같이 속히 떠나 - '이같이'(*          , 후토스)라는 말속에는 바울의 깊은  탄
식과 안타까움이 있으며 '속히'(*            , 타케오스)라는 표현 속에는 전혀 기대
하지 못했던 상황이 갈라디아 교회에서 일어났음을 보여준다. 바울은 갈라디아 교인들
이 거짓 복음을 좇은 것도 이상한데, 상상외로 빠르게 복음을 떠나는 모습들을 보았을
때 더욱 의아해 하고,안타까워 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갈라디아 교인들 중 유대주의를
추종하는 자들은 하나님을 떠나 그리스도와의 교제를 잃어버리고  하나님께서  부르신
거룩한 삶과 하나님 나라의 영광과 진리를 버리고 구원에서 떠나는 자들이 되었을  것
이다.

=====1:7
  다른 복음은 없나니 - '다른'(*    , 알로)은 6절에 사용된 '다른'(*            ,
헤테론)과  차이가 있다.  즉 '알로'는 많은 것들이 있는 가운데 다른 것을 지칭하고,
'헤테론'은 단 두 가지 중에 하나를  가리킨다(TDNT).  이렇게 볼 때 본절에 '헤테론'
대신 '알로'가 사용된 것은 복음의 절대성과 유일성을 강조하려는 시도에서  비롯되었
음을 알수 있다. 한편 6절의 '다른 복음'은 '또 하나의 복음'이 아니라 왜곡된 복음을
의미한다(Cole). 왜곡되어 그릇된 복음은 이미 복음이 아니다. 왜냐하면 복음은  하나
님께서 주신 것으로 완전하기 때문이다.
   너희를 요란케 하여 - 헬라어 '타랏손테스'(*                      )는  문자적으
로 '소란케 하는 자들'을 의미하며 여기서는 '거짓 교사들'을 가리킨다. 이단어는  행
17:8에서 바울을 시기하는 데살로니가의 유대인들이 소요를 일으켰던 일에 사용되기도
했다. 거짓 교사들이 교회를 소란케 하는내용은 (1) 복음을 변질시키며,  (2)  교회의
질서를 혼란시키는 것이다.

=====1:8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 갈라디아 교회의 율법주의자들은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에
게 거짓의 율법을 강조하면서 천사에 대해서도 가르쳤는지 모른다(Cole).  유대인들은
일반적으로 천사를 율법의 중보자(仲保者)로 생각했다. 특히 이러한 사상은 후기 유대
교의 이단들에게서 부각되었다. 아무튼 바울은 그릇된 사상을 가지고 복음을 왜곡시키
려는 것은 도무지 용납될 수 없음을 단호하게 설명한다.

=====1:9
  누구든지...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 바울은 8절에 이어 저주를 반
복한다. '저주'의 헬라어 '아나데마'(*             )는 하나님께로부터 버림받는  것
으로 우상이 파멸되는 것과 갈은 저주를 뜻한다(신 7:26). 바울은 이 단어를 같은  의
미를 가진 '카타라'(*            )와 구분하여 사용하였다. '카타라'는 3:10, 13에서
율법의 요구를 이루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관련하여 사용되었다. 주께서 십자가
위에서 받았던 저주는 율법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저주를 대신 지신 것이다. 이제 예수
께서 십자가 위에서 받은 저주를 부인하고 다시 율법의 저주 아래로 들어가려고  하는
자는 우상의 파괴와 같은 멸망을 받게 될 것이다. 한편 '누구든지'라는 말은 '다른 복
음을 전하는 모든 자들'을 의미하는봐 앞절의 '어떤 사람들'(7절), '하늘로부터 온 천
사들'(8절), 심지어는 사도 바울 자신까지 포함하는 모든 자들을 의미한다. 따라서 하
나님의 뜻을 이루신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부인(否認)하는 자는 누구를 막론하고  저주
를 받을 것임을 바울은 극령하게 보여준다.

=====1:10
  사람의 기쁨을 구하는 것이었더면 - 갈라디아 교회의 유대주의자들은 율법적인  배
경을 갖지 못하면 그리스도의 십자가도 헛된 것에 불과하다고 가르쳤던 것 같다. 그래
서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을 증거한 바울의 가르침은 사람의 환심을 사려고 율법의 요구
들을 포기한 것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그러나 바울은 이에 대해 자신을 추종하는 세력
을 얻으려는 인간적 야심을 결코 갖지 않았다고 분명하게 선언한다.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 바울은 자신이 그리스도의 종이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종'(*            , 둘로스)은 한 주인에 대한 절대적 복종을 의미하는 용어이다. 바
울은 유대인으로서 율법에 열심을 가진 자였으나 이제 율법의 완성자이신  그리스도에
게 철저히 복종한다.

=====1:11
  형제들아 - 헬라어 '아델포스'(*              )가 신약성경에서는  '같은  조상을
가진사람'(행 3:22;롬 9:3), '믿음으로 연합한 가족'(마 23:8;롬 1:13).  '그리스도의
동역자'(고후 1:1)등의 의미로 사용되었으며 포괄적으로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음으
로 받아들이고 참된 복음의 진리를 따르는 모든 자들을 칭하는 용어로 사용되었다. 바
울은 여기서 갈라디아에 있는 그리스도인을 지칭하여 이 말을 사용했음이 분명하다.
   사람의 뜻을 따라 된 것이 아니라 - 헬라어 본문에서는 본절의 '뜻'에 해당하는 단
어가 없고 다만 '사람을 따라'(*                          , 카타 안드로폰)로  되어
있다. 그러나 문맥상 4절의 '하나님의 뜻을 따라'(*
   , 카타 토 델레마 투데우)와 반대되는 개념으로 사용된 것으로 보아  '사람
의 뜻을 따라'로 이해해도 무방하다. 이처럼 바울은 반대되는 개념을 사용하여 자신의
사도권이 사람의 전승이나 인위적인 교육등에 의한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왔음을
강조하고 있다.

=====1:12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요 - 바울은 하나님을 섬기는 열심에서 유대교의 사도로
일한적이 있었다. 당시 사도의 개념은 산헤드린이나 여제사장 등 높은 직위에 있는 종
교 지도자들로부터 명령을 받아 임무를 완수하는 자들을 칭하기도 했다. 바울이  다메
섹으로 향할 때에 그의 임무는 이러한 성격의 것이었다(행 9:2). 그러나 바울  사도는
지금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 이전에 사람들의 명령에 따라 하는것과 다르다는 것을  주
장한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 - 바울은 반복적으로 부정어를 사용하여 사도권의 근거
를 피력하다가 이제 접속사 '알라'(*        , '그러나')를 사용하면서  자신의  전한
복음이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사실을 강조한다. 예수의 열 두 제자들과는  달리
바울은 예수와 함께하는 삶을 통해 가르침을 받은 적이 없다는 점에서 사도적  권위에
도전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나타나신 주님과의 만남을 기
점으로 사도의 사명을 받았다(행 9:4-26). 또한 열 두 제자들이 비록  바울보다  먼저
사도가 되긴 했지만, 그들 역시 성령에 대한 약속(요 14:16;16:13)이 오순절 사건으로
성취된 이후에야 비로소 사도가 되었다. 다시 말해 제자들이 오순절 다락방에서  성령
을 받아 비로소 사도로서 활약했듯이 바울은 다메섹의 도상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직
접 만나 이방인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았다.

=====1:13
 유대교에 있을때에 행한 일 - '행한'의 헬라어 '아나스트로펜'(*
  )은 역사적인 사건뿐만 아니라 그가 행한 일들과 근본적인 삶의 태도와 방식을 포함
한다(Huxtable). 바울이 여기서 '유대교'(*                   , 유다이스모)라는  호
칭을 사용하는 것은 비록 바울이 이전에 유대교에 속하여 모세 율법을 삶의 절대적 표
준으로 삼고 하나님을 열심히 섬기고자 했지만, 유대교가 단지 '인간 종교 집단'에 지
나지 않는다는 것을 시사한다. 바울은 이제 유대교에서 벗어나 객관적 입장에서  자신
이 과거에 유대교를 위해 일했던 사실을 회상(回想)하고 있다.
   하나님의 교회를 심히 핍박하여 - 바울은 교회를 핍박하는 일에 있어서 가히  광신
적이었다. 그는 자신이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편견과 교만으로 교회를 핍박했다.  본절
에서 '하나님의 교회'(*                               , 엑클레시아  투  데우)라는
말을 사용한 것은 두 가지 의미를 함축한다. (1) 교회를 핍박하는 것은 메시야이신 예
수를 향한 것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 대적하는 것임을 보여준다. (2) 구약 시대에는
유대 민족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부르심을 받아 특권을 누리고 있었으나, 신약  시대에
는 교회가 참 이스라엘로 전이되었다. 따라서 바울이 하나님을 사랑한다고하는 열심으
로 교회를 핍박한 것은 결국 하나님을 대적하는 결과가 되었다.

=====1:14
 유대교를 지나치게 믿어 - 바울이 과거에 유대교를 신봉했던  정도를  나타내는데,
'지나치게'의 헬라어 '프로에코프톤'(*                    )은 '길을 밝히다', '숲에
서 앞서서 길을 개척하다' 등의 의미를 갖는다(Robertson). 유대교의 대학자인 가말리
엘 문하에서도 뛰어난 제자였고 유대교에 속한 다른 사람들보다 앞서서 나아가고 있었
다. 이처럼 유대교에 대해 열심이었던 바울은 율법과 랍비들의 전승에서 해방되어  복
음으로 말미암은 완전한 자유를 선포하게 되었다. 만약 바울이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
한 자유자가 되지 못했다면 할례와 율법을 돌아보는자(행 15:5)가 되고  말았을  것이
다.그러나 그는 그리스도의 계시에 의하여(12절) 그 높은 율법의 벽을 훌쩍 넘어설 수
있었다.
   내 조상의 유전 - 유대인의  율법은  두  가지  형식을  취했는데  하나는  정언적
(categorical) 또는 절대적(absolute)이며 또 하나는 결의법 또는  판례법  형식이다.
전자는 십계명과 같이 예외가 없는 지상 명령의 성격을 띤 것으로 운율을 가지고 있어
예배시에 낭송되거나 암송하기에 편리하도록 만들어져 있다. 반면에 후자는 실제 생활
속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을 해결하는 관습법과 같은 것으로 본절의  '유전'(tradition)
은 후자에 가깝다. 랍비들은 613개 조항의 법 조문을 만들었는데 이것은 바로  전자를
실생활에 확대 적용하여 세분화(細分化)한 것이다(Lenski). 결국 '유전'은 인간이  만
들어 놓은 것이다. 바울은 인간이 만든 유전의 울타리에 갇혀 하나님의 교회를 핍박하
였다.

=====1:15
  태로부터 나를 택정하시고 - '택정하시고'의 헬라어 '아포리사스'(*
 )는 '어떤 경계로부터 떨어지게 한다'는 뜻으로서 어떤 특정한 직분이나 사역에 관련
하여 성별(性別)됨을 나타낼 때 사용되었다(2:12;행 19:9). 구약  시대의  선지자들은
그들의 부르심이 '어미의 태로부터' 된 것임을 고백하고 있다(사 49:1;램 1:5).  바울
은 구약 시대의 선지자들이 가지고 있던 사상을 잇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바울
은 이러한 하나님의 영원한 구원 계획과 예정을 선지자나 사도 같은 특별한 사람들에
게만 국한시키지 않고 하나님의 백성된 모든 사람에게 적용시키고 있다(롬 9:11).

=====1:16
  그를 내 속에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실때에 - 예수께서 바울의 영혼과 마음속에 내적
계시를 통하여 자신을 나타냈음을 말한다. 바울은 내적 계시를 통하여  예수가 누구시
며 그의 죽음과 부활의 의미가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본절은 또한 역사적으로 다
메섹 도상의 체험(행 9:1-9)을 시사하며 아울러 바울이 성령의  충만함과  그리스도의
말씀을 소유하고 있음을 암시한다(Chrysostom, Huxtable). 이렇듯 바울이 내적 계시를
통하여 그리스도에 대한 지식과 말씀을 소유한 것은 자신의 이해를 위한  것일뿐만 아
니라  이방에 그리스도를 전파하기 위함이었다.

=====1:17
  오직 아라비아로 갔다가 - 바울은 자신이 하나님으로부터  부르심을 받아 이방인의
사도된 것을 강조하기 위해 '오직'(*        , 알라)이라는 말을 사용하였다. 또한 구
태여 먼저 사도된 자들을 만나지 않았다는 사실과 혈육과 의논하지 않았다는 것(16절)
을 언급하고 있는것도 이와 같은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한편 '아라비아'는  매
우 광범위한 지역이기 때문에 바울이 갔던 장소가 어디인지 정확하개 알수 없다. 사실
다메섹도 아라비아에 속한 곳이므로 다메섹에서 그리 멀지 않은 지역으로 갔으리라 추
측된다(Cole, Huxtable). 혹자는 모세가 율법을 받았던 것을 상기하여 이곳을  시내산
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Lightfoot). 그러나 이 견해도 명확한 근거가  없다.  의미상
'아라비아'는 예루살렘과 상관없는 장소이며 또한 바울 자신이 개인적으로 예수의  계
시를 체험하고 이해한 장소이다.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를 만남으로 그의  삶과
가치관이 변화되었지만 자신이 경험한 계시를 체계화시키는 데는 많은 시간이  필요했
을 것이다. 이는 마치 예수께서 그의 사역을 준비하시면서 세례를 받으시고 광야에 나
가 기도하신 것과 유사하다. 바울은 광야에서 혈육과 분리되고, 예루살렘에 있는 다른
그리스도인의 영향도 받지 않고 하나님과의 개인적인 교제를 통하여 자신에게  주어진
특별한 계시, 즉 이방인들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그 사역을 위하여 준비하는
기간을 가졌다.

=====1:18
  그 후 삼 년 만에 - 본 구절에 대하여는 두 가지의 해석이 가능하다.  (1)  바울이
회심하고나서 삼 년이 지났다는 것이다. 즉 문맥상 바울이 자신의 독특한 회심을 강조
하고  있기  때문에  회심에  역점을  두었을  것이라는  견해이다(Boice,  Huxtable,
Lenski). 바울이 아라비아에서 다메섹으로 돌아온 때로부터 삼년이 경과되었다는 것이
다. 아무튼 본절에서 바울이 강조하고자 하는 바는 게바를 만나기 전에  상당  기간이
소요되었다는 사실이다. 한편 어떤 학자는 3년이란 기간을 문제삼아 본문의 기록이 행
9장에 나타난 바울의 행적과 모순된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누가가 행 9장에서  바울
의 행적에 대하여 기록할때 '아라비아로 간것'에 대하여는 침묵하고 있기때문이다. 그
러나 누가의 침묵이 바울의 아라비아행을 부정할 수 있는 충분한 증거는 못된다. 누가
는 단지 특별한 일이 발생하지 아니한 기간에 대하여 침묵한 것뿐이며, 그 반면에  바
울은 본서에서 게바를 만나기 전에 일정 기간 동안 하나님과의 깊은 영적 교제를 통해
자신의 신앙과 신학을 재정립(再定立)하였음을 시사하고 있는것이다.
   게바를 심방하려고 - '심방하려고'의 헬라어 '히스토레오'(*              )는  영
어의 '히스토리'(history, '역사')의 어원이 되는 말로서 '이야기를 들려준다'는 의미
이다. NEB는 이를 '게바와 가까워지려고'(to get know)라고 번역하였다. 본 구절은 행
9:26-30에 기록된 사건으로 바울은 바나바에 의하여 예루살렘 교회에  소개된  이후에
베드로를 찾아갔다. 그런데 사도 바울이 자신의 사도성을 주장하면서 베드로와의 만남
을 언급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에 대하여는 두 가지의 추측이 가능하다. (1)  2절에
서 언급한 자신을 지지하는 '형제' 가운데 베드로가 포함되었음을 암시하기  위해서이
다. (2) 바울의 입장에서 보면 이 방문이 사적인 방문이며 어떤 인간적인 권위의 지지
를 얻으려는 방문이 아니었음을 밝히려는 것이다. 이렇게 하여 바울은 자신의  사도권
이 주께로부터 유래되었음을 밝히는 것이다. 양자가 조심스럽게 적용되어야 하겠으나
문맥상 후자를 택하는 것이 나을 듯하다. 사도는 지금 예루살렘 교회의  영향을  받지
아니한 자신이 사도권을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15일 동안 머무르며 게바를 통
하여 예수에 대한 지식과 경험을 들을 수 있었을 것이며, 바울은  그때에  그리스도에
관한 사실들과 가르침을 바르게 정립하게 되었을 것이다. 또한 자신을 이방인의  사도
로 부르신 하나님의 섭리에 대하여 설명하였을 것이다.

=====1:19
  주의 형제 야고보 - 바울이 만난 야고보가 세베대의 아들이면서 요한의 형제인  야
고보(마 10:2)나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마 10:3)가 아니라 예수의 친형제 야고보라는
것을 분명히한다. 예수의 선교 초기에 그의 형제들과 친족들은 예수를 믿지 않았을 뿐
만 아니라 미친 자로여겼다(막 3:21;요 7:5). 그러나 예수의 부활을 목격한 그들은 어
머니 마리아와 함께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서 성령을 체험하고 진실한 신자가 되었으
며(행 1:14) 야고보는 예루살렘 교회에서 영향력있는  지도자가  되었다(2:9,  12;행
12:17;21:18 등). 어떤 학자는 바울이 야고보를 사도로 인정하느냐 또는 인정하지  않
느냐에 관심을 가지지만(Cole), 당시 교회의 보편적인 사도 개념으로 이해할 때  지도
자인 야고보를 사도로 인정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보다 중요한 문제는 바울이
왜 열두 제자 중 베드로 외에 야고보만을 보았다는 것을 강조하는가  하는  문제이다.
바울은 예수에 대한 보다 넓고 많은 지식을 얻기 위하여 수제자를 택했으며 또한 예수
의 친형제를 택한 것 같다. 야고보는 이방인들에게도 너그러웠으며 온유한 인격을  소
유하였으므로 바울에게도 친절하게 예수에 대하여 설명해 주었을 것이다.

=====1:20
  하나님 앞에서 거짓말이 아니로라 - 바울이 이렇게 표현하는 것으로 보아 갈라디아
교회의 구성원 중에는 아직도 바울의 사도권에 대해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자들이  있
었던 것 같다. 아마도 바울이 교회의 지도자들과 충돌할때에 발생되는 문제는 그의 진
정한 사도권에 관한 것이었지만, 교회의 구성원들과의 관계에 있어서 그의 마음을  아
프게 하는 것은 자신이 지난 날에 그들을 핍박했던 사실이었을 것이다. 바울은 이렇게
자신의 쓰라린 과거의 경험을 회상하면서 갈라디아의 교인들에게 거짓 교사들을  멀리
하고 복음에서 떠나지 말라고 엄숙하게 권고하고 있다.

=====1:21
  수리아와 길리기아 지방에 이르렀으나 - 바울은 본절에서 자신의 연대기적인  행적
을 설명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사도행전에 의하면 그는 예루살렘에서 가이사랴를  들
러 길리기아 지방으로(행 9:30) 갔다가 안디옥에서 함께 사역하기를 바라는 바나바의
요청에 의해 수리아지방으로 갔다(행 11:25,26). 길리기아는 소아시아의 동남부  연안
지대로서 바울의 고향인 다소를 포함하는 지역이며 수리아는 팔레스틴 북부 지역으로
수도인 안디옥을 중심으로 하는지역이다. 바울이 이 두 지역을 언급하는 것은 (1)  예
루살렘 교회의 영향을 받지 않는 먼 곳에서 사역했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함이며,  (2)
또한  예수를 만난 이후에 복음을 위해서 열심으로 헌신했다는 것을 증거하기  위함이
다.

=====1:22
  유대에...나를 얼굴로 알지 못하고 - '얼굴로'에 해당하는 헬라어 '토 프로소포'(*
     )는 '개인적으로'라는 의미이다(Longenecker). 행  8장에  나타난
박해로 인해 유대 지방의 그리스도인들은 바울이 어떤 인물인지 익히 들어 알고  있었
을 것이다. 하지만 바울이 어떤 인격의 소유자인지 구체적으로  아는사람은 예루살렘
교회에 국한되어 있었음이 분명하다. 그러므로 변방(邊方)에 있던 유대인의 교회는 바
울에 대해 개인적으로 잘 알지 못했을 것이다(Cole).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교회 - 바울이 13절에서는 '하나님의 교회'라고 하였는데 본절
에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교회'라고 표현한 것은 유대교의 회당과  구분짓기  위함인
것 같다(Cole). 또한 이러한 표현은 살전 2:14의 '그리스도 예수안에서  유대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들'이라는 표현과 동일한 용어로 보인다(Longenecker).  그러므로  본문
이, 유대인과 이방인이 따로 교회로 모이는 것을 시사한다거나, 유대  지역의  교회가
구체적으로 지역 교회의 형태를 가졌음을 보여준다고 하기는 어렵다.  한편 '교회'를
복수인 '엑클레시아이스'(*                   )로 사용하는 것은 단지  유대  지역에
있는 교회뿐만 아니라 사마리아와 갈릴리 지역의 교회까지 포함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행 9:30).

=====1:23
  잔해하던 그 믿음을 지금 전한다 - '지금'(*      , 뉜)은 현재 사실을 과거  사실
과 대조하여 사도 바울이 회심한 사실을 보다 선명하게 나타낸다. 교회를 핍박했던 바
울이 회심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자가 되었다는 사실은 과거 바울로부터 직접
핍박을 받았던 유대지역의 그리스도인들에게는 하나님의 기적적인 역사가 되고도 남았
다. 본문은 바로 그와 같이 변화된 바울을 두고 유대 그리스도인들이 이구동성으로 했
던 말을 인용한 것이다(Ernst Bammel).

=====1:24
  나로 말미암아 영광을...돌리니라 - 본절의 이면(裏面)에는, 바울의 사도직과 메시
지를 부정하면서 정면으로 대적하는 자들이 바울에 대해 매우 불만스럽게 생각한 모습
과 바울의 초기 선교 사역의 소식을 듣고 매우 기뻐하며 하나님께 영광과 감사를 돌리
는 유대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이 대조적으로 암시되고 있다. 한편 본절의 내용은  하나
님께서 당신의 종에  관하여  말씀하신 부분인 사  49:3  내용과  매우 유사하다
(Longeneck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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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음과 사도직에 대한 바울의 변증[갈 1장] 2017.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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